스포일러라서 접습니다
현존 최강의 저그 박성준과 현존 최강의 테란 최연성이 맞붙는 결승전인지라, 결승 대진이 완성되고 나서부터 상당한 기대를 했었다.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일방적인 3:0 승부로 끝이 나버렸다. 그러고 보니 IOPS 결승전 이윤열 vs 박성준도 이런 식으로 배신(?)을 당했었네. 허허허..
결승전 시작부터 맵이 테란 쪽으로 너무 좋지 않냐는 이야기도 많았고, 최근 투신의 테란전 분위기가 영 아니어서 아마 2/3 이상의 사람들은 최연성의 승리를 예상했을 것이다. 하지만 투신이 그런 불리한 여건들을 전부 이겨내고 3회 우승을 차지하길 바랬는데 아쉽다. (역시 내가 저그 유저라 그런가.. -_-;)
경기내용이랑 그냥 보면서 느낀 바를 간단하게 경기별로 적어보려고 한다. 내가 뭐 스타 실력이 그다지 뛰어난 것도 아니고 해서 좀 틀리게 본 면들도 있을 수 있겠지만... 이견이 있으면 얼마든지 리를 달아주셔도 좋아요. :)
1경기 신한_개척시대 최연성(T, 12시) vs 박성준(Z, 6시)
그나마 러쉬거리가 멀게 스타팅이 나와서 저그에게 그다지 나쁘진 않았다. 초반 테란은 무난하게 2배럭스로 출발했고 저그는 선스포닝 후 앞마당 해처리. 그러나 서플라이 디팟으로 입구를 좁힌 테란은 세번째 배럭스를 올리고 저그는 이를 정찰하지 못한다.
러쉬거리에 대한 부담이었는지 저그는 2해처리 상태에서 러커 쪽으로 테크를 올리고, 테란은 센스 있는 마린 진출로 오버로드 한 기를 잡아내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3배럭스에서 모은 마린, 메딕, 파이어뱃으로 러커가 변태중인 저그의 앞마당을 덮치고...
그 공격에 앞마당이 밀려버린다. -_-;
테란의 바이오닉 병력들이 저그의 앞마당 성큰라인을 공격하기 시작했을 때 성큰 5~6개가 있었다. 보통 2배럭스 병력이라면 들어올 엄두도 못 내는 상황이지만 애초에 불꽃으로 뚫으려고 마음 먹고 나온 테란인지라 파이어뱃과 메딕 비중이 상당히 높았고, 오버로드가 잡힌 탓인지 러커 변태 타이밍에도 영향이 있었을 거라 본다.
결정적으로, 저그가 3배럭스라는 걸 전혀 눈치채지 못한 것 같다. 아쉬운 점이 있었다면 테란이 저그의 앞마당을 덮치기 전에 거의 절반 이상 내려온 시점에서야 그 병력을 확인했다는 것이다(인터넷으로 보느라 미니맵 화질이 안좋아서 확실하진 않다. 누구 TV로 보신 분 중에 확인 부탁드려요). 그리고 바이오닉 병력이 성큰과 싸울 때 받쳐줄 저글링이 거의 없었다는 것도 약간은 실수가 아니었을까 싶다. 물론 파이어뱃 비중이 높았어서 그다지 큰 역할은 못했을 것 같기도 하지만...
성큰 라인 제거 후 스캔을 아끼며 러커를 피해 본진으로 난입하는 최연성 의 센스가 돋보였다. 덕분에 본진에 입성한 테란 병력은 본진을 흔들고 러커가 본진 수비를 위해 앞마당에서 철수한 걸 노려서 추가되는 병력은 앞마당 해처리를 두드리고 있고... 뭐 어차피 승부는 이미 결정되어 있었던 거긴 하지만.
8분도 되지 않아서 최연성이 1경기를 가져간다. 1:0.
2경기 Ride of Valkyries 최연성(T, 5시) vs 박성준(Z, 7시)
테란은 초반 8배럭스를 시도하나 저그는 선스포닝 후 3해처리. 이를 정찰한 테란은 마린을 무리하게 운용하지 않고 더블커맨드를 시도한다. 그러나 너무 방심한 탓일까, 언덕 입구에 세워둔 SCV를 빼는 순간 발업도 되지 않은 저글링이 과감히 언덕 위로 올라가 마린을 덮쳐 잡아내고 더블을 시도한 테란은 위기에 몰리게 된다.
이후 3해처리에서 라바가 나오는 족족 생산되어 테란 본진으로 달리는 저글링... 아카데미가 완성된 테란은 2배럭스에서 계속 파이어뱃을 생산해 방어하려 하지만 계속해서 바꿔치기를 당하고... 아마 이대로 게임이 끝나겠구나 생각한 사람들도 많았을 것이다. 파이어뱃이 다 합쳐서 8기 정도 2기씩 저글링에게 각개격파를 당하지만 테란은 결국 SCV의 도움으로 간신히 언덕을 사수하는 데 성공하고, 드론을 포기하고 저글링을 찍은 저그는 제법 가난한 상태.
뒤이어 테란은 금세 모이는 바이오닉 병력을 바탕으로 앞마당을 돌리기 시작했고, 레어가 완성된 저그는 스파이어 테크를 타기 시작한다. 레어가 완성되고 나서 바로 스파이어를 짓지 않았던 것에도 볼 수 있듯이 저그는 상당히 가난한 상태였고 이 타이밍에 드론을 상당히 보충한 것으로 보인다.
스캔으로 스파이어를 확인한 테란은 적재적소에 터렛을 짓고 뮤탈리스크를 방어할 준비를 하는데, 터렛 위치들이 정말 예술이었다. -_-b 저그가 노릴 만한 요소(본진 자원 근처에는 안 지었다만)와 뮤탈의 동선까지 염두에 둔 멋진 터렛 공사였다. 그러면서 4배럭스까지 올려 바이오닉 위주의 플레이를 염두에 둔다.
잠시 후 뮤탈 게릴라가 들어왔지만 터렛 2개 깨고 SCV 소수 잡는 데에 그치고, 시간을 더 이상 벌지 못한다. 게릴라를 하면서 저그는 11시 가스 멀티를 시도하는 동시에 러커를 준비하고, 테란의 바이오닉 병력은 중앙으로 진출한다.
그리고, 잠시 후 개인적으로 이 경기의 승부를 갈랐다고 생각하는 전투가 9시에서 펼쳐지고, 이 잠깐의 전투는 테란의 압승으로 끝난다. 그리고 11시 해처리가 파괴되고 저글링 러커의 역러시가 가볍게 막히자 투신 gg.
결승전이 끝나고 많은 분들이 이 경기의 패인을 저글링 올인 러시가 막힌 것으로 꼽으셨다. 물론 그 말도 맞는 말이기는 하지만, 나는 저그에게 한 번의 기회가 더 있었다고 본다. 테란의 순수 바이오닉 병력이 중앙으로 진출하여 11시를 노릴 때, 9시 지역 즉 저그의 미네랄 멀티 근처에서 저그의 병력과 조우하게 되었다. 그 당시 저그의 병력 조합은 뮤탈리스크+저글링이었고, 러커는 앞마당에서 거의 변태가 완료된 시점이어서 곧 전투에 참가할 수 있었고, 앞마당에서 미네랄 멀티로 향하는 길도 뚫려 있었다.
하지만, 저그는 러커가 제대로 합류되기 불과 1~2초 전에 뮤탈리스크+저글링을 테란의 바이오닉 부대에 헌납하고 말았다. 탱크나 배슬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러커 6기가 달려드는 타이밍에 맞추어 싸웠으면 적어도 바꿔치기는 할 수 있는 병력이었다. 그러나 러커 6기가 버로우를 시작한 시점에는 이미 뮤링이 정리되고 테란의 병력은 언덕 위로 여유있게 빠지고 있었다.
저그를 해본 사람이면 다들 알겠지만, 온리 러커로 개방된 지형에서 바이오닉 병력의 움직임을 제한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 것이다. 덕분에 러커의 진격을 늦추면서 11시로 유유히 이동한 테란의 병력은 결국 11시 해처리까지 부숴 버린다.
저그를 주종으로 플레이하면서 그나마 느낀 것은, 테란과의 경기를 할 때 병력을 어느 정도 유지하고 있는가는 정말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것이 특히 중반 이전이라면. 다들 알다시피 저그는 드론 생산과 병력 생산을 항상 선택해야만 하며, 초중반에는 해처리 수, 즉 라바의 수의 제약 때문에 심지어 병력 생산에 집중한다 치더라도 테란의 끊임없는 러시에 말려버리는 경우가 생긴다.
예를 들면 초반에 이런저런 이유로 가난하게 출발한 저그가, 정말 쉴 새도 없이 끊임없게 진출하는 테란의 병력과 싸움을 해 주기 위해 드론 보충을 못하고 계속 병력 생산에만 집중하다가 결국 계속 벌어지는 자원력의 차이에 의해 수비만 하다가 끝나는 경기를 저그 유저라면 경험해 봤을 거라 생각한다.
그래서, 그 9시 전투에서 뮤링을 전부 소모해 버린 탓에 저그의 조합이 단조로워졌고 물량도 바로 나오는 테란의 새 병력을 상대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해져 버렸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 한번의 실수가 마지막 기회를 날려버린 것이고, 바로 저그의 패배로 직결되었다고 보는 것이 내 생각이다.
(사실 그 전투에서 잘 싸워서 테란의 병력을 잡아내고 11시를 지켰어도, 뒤이어 나오는 테란의 병력을 이겼을지 어쩔지는 확신이 없기는 하다. 그만큼 최연성의 생산력은 대단했다 덜덜덜)
어쨌든 2:0.
3경기 新815 최연성(T, 11시) vs 박성준(Z, 5시)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3경기. 나중에 인터뷰 들어보니까 최연성은 오늘 815가 4경기인 줄 알았다고 한다 덜덜덜...
테란은 원배럭스 이후 엔베에서 빠른 업그레이드를 돌리면서 테크를 올린다. 저그는 앞마당에 해처리를 펴고 레어 가면서 3해처리 히드라 체제. 일단 초반 분위기는 저그에게 매우 좋았다. 발업된 다수의 히드라와 속업 오버로드로 드랍쉽의 움직임을 완벽하게 차단했으며, 1시 스타팅 포인트도 가져가면서 2가스를 돌리게 되었다. 반면에 테란은 생각보다 앞마당 멀티도 늦었으며, 드랍쉽의 움직임이 속속 파악당하는 바람에 이렇다 할 공격을 하지 못했으며, 1시를 공격하러 갔던 바이오닉 병력이 다수의 히드라에 싸먹히면서 기세는 완전히 저그 쪽으로 기우는 듯 했다.
하지만 역시 업그레이드의 힘일까. 앞마당 먹고 2스타 돌리면서 SK 체제를 구축한 테란 상대로 러커를 거의 조합하지 않은 다수 히드라로 상대하는 저그. 이론적으로는 SK를 상대하는 가장 좋은 체제는 히드라 러커 (+디파일러) 겠지만, 러커의 비중이 너무 적고 업그레이드도 밀리는 바람에 결국 중앙싸움에서 계속 손해를 보게 되고, 쌓이는 바이오닉 병력과 베슬을 감당하지 못하고 앞마당을 내주면서 3:0으로 결승전이 끝나게 된다.
내가 본 3경기 저그의 패인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생각보다 빠른' 테란의 업그레이드였다. 박성준이 짜온 그림에는 분명히 히드라의 빠른 공방업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테란은 팩토리보다 엔베를 먼저 올리면서 빠르게 공업을 눌러주었고, 저그로서는 공1업이 되기 전까지는 이를 알 방법이 없었을 것이다. 저그의 체제상 오늘의 히드라 공업은 정말 빠른 것이었고, 분명 업그레이드에서 우위를 점하면서 마린과 대등한 싸움을 해주겠다는 생각으로 보였다. 다만 테란의 업그레이드가 생각보다 너무 빨라서 이러한 장점이 상쇄되어 버렸다는 것이... 운이 나빴다고 해야 되나 가위바위보에서 졌다고 해야 하나.
두번째는 러커의 수가 부족했다는 것이다. 분명 오늘 경기를 보신 수많은 분들은 이렇게 이야기할 것이다. 러커가 너무 적었다고. 물론 나도 그 생각에 동감한다. 하지만, 오늘의 그 체제는 러커가 부족할 수 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가스가 없었기" 때문이다.
1시 멀티를 먹기 전까지, 저그는 1가스였다. 보통 로템 같은 맵에서 앞마당을 먹고 플레이를 해서 2가스를 초반부터 돌리게 되면 (일반적으로 초반에 미네랄이 부족하기 때문에 앞마당을 먹자마자 2가스를 돌리지는 않는다. 하지만 원하는 시점에 2가스를 바로 돌릴 수 있다) 러커가 정말 많이 나오긴 한다. 하지만, 그건 저글링 러커 조합일 때의 이야기다. 초반에 오버로드 속업을 한 데다가(나중엔 수송업도 했겠지), 히드라 발업에 초반부터 계속 히드라를 찍어줬으니... 아마 가스가 들어오는 족족 전부 써버렸을 것이다. 게다가 빠른 공업까지 눌렀으니 말 다했다. 2가스가 돌아간 시간이 그렇게 짧은 것은 아니었지만, 보통 지상맵에서 히드라 러커 체제를 운용하는 데 드는 자원을 생각해 보면, 오늘의 그 러커 숫자는 이해가 된다.
앞마당이 미네랄 멀티였기에 아마 미네랄이 부족하진 않았을 것이다. 가스를 들어오는 족족 다 쓴다고 가정했을 때, 러커 1마리를 추가하려면 히드라 4마리를 줄여야 한다. 고작 러커 3마리 추가하는 데 히드라 1부대를 뽑지 못한다면 그것도 쉽게 생각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러커를 많이 확보하고 남는 미네랄로 계속 멀티를 이곳저곳 늘려가는 것이 더 현명한 판단이었다는 생각도 들기는 한다. 하기야 이런 종류의 논의가 늘 그렇듯이 실제로 그 상황이 되어보지 않고는 정확히 알 수 없는 거니까.
그 좋았던 분위기에서 멀티를 동시에 두 군데 팍팍 늘리고 빨리 가스 채취를 더 하는 데 집중하는 편이 나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든다. 하긴 그러기엔 최연성의 쌓이는 베슬이 너무 무섭기는 하더라. ㅠ_ㅠ 저그유저로서 안습 ㅠ_ㅠ
뭐 이리저리 주절주절 해봤지만, 사실 오늘 최연성 선수가 너무 잘했다. 왜 치터테란이라고 불리는지 정말 새삼 느낄 수 있었다. 다만 투신은 테란전을 조금 더 갈고 닦아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옛날의 그 포스가 많이 사라진 것 같아서 아쉽다.
최연성 선수 우승 축하드리고, 박성준 선수도 수고하셨습니다. :)



